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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배우 박시연(33)의 이름 앞에 왜 '팜므파탈 섹시미'가 단골 수식어로 따라 다니는지 수긍하기가 쉽지 않았다. 적어도 영화 '간기남'(감독 김형준)이 선을 보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미스코리아 출신에 동양 여성에게서는 보기 힘든 잘록한 허리 라인에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 라인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여배우로서의 장점이야 충분히 인정을 하지만 그래도 전작인 '마린 보이'와 '사랑'에서는 그녀가 가진 본래의 섹시한 매력을 절반도 끌어내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간기남'은 다르다. 스릴러의 외피를 쓰고 코미디를 선보이는데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한 연출자 김형준 감독의 일부 과도한 욕심은 차치하고 영화는 '박시연=뇌쇄적 섹시미의 소유자'라는 공식 하나만은 여실히 입증시켰다.

비단 영화의 풀샷에서 박시연의 뒷나신이 등장하고 상반신 누드가 등장해서만은 아니다. 남편의 장례식에서 외간 남자와 정사를 벌이는 파격적인 내용의 장면 때문만도 아니다. 특출난 노출이 없었던 박희순과의 빗속 키스신에서의 뒤태나 남편의 살인 현장에서 내내 선보였던 흔들리는 눈빛만으로도 박시연만의 뇌쇄적인 매력은 빛을 발했다.

추운 겨울을 마른 가지로 버텨낸 나무들이 따뜻한 봄을 맞아 꽃을 만개시키듯 쉬지 않고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자신의 때를 기다린 박시연의 여성미도 제 때를 만나 만개한 것 아닐까.

'간기남'의 개봉 직전인 지난달 2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박시연을 만났다. 지난해 11월 결혼해 한창 깨가 쏟아지는 신혼을 즐기고 있는 탓인지 매 질문에 긍정적이고 털털한 답변들이 이어졌다.

- 김사랑, 손태영과 미스코리아 동기다. 최근 동기들 중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 저는 대회 출전 당시에도 너무 즐거웠는데 지금도 그 때 합숙하던 일들이 떠오른다.

- 필모그래피가 상당히 화려하다.

▲ 제가 27살에 데뷔했다. 남들보다 늦게 데뷔했기에 초반에 상당히 조바심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작품을 전혀 쉬지 않고 하게 되더라. 자꾸 '나쁜 여자', '팜므파탈' 캐릭터의 제안이 많은데 아마 외모의 영향도 있을 거다. 이상하게 캔디 캐릭터보다는 나쁜 여자 성향의 제안이 더 들어온다. 배우가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니 들어오는 작품 중심으로 열심히 했다. 평소 화보 촬영도 좋아하는데 사진 한 장에 모든 걸 보여주다 보니 파격적이거나 센 장면들도 꽤 있었다. 그래서 그런 이미지가 굳어진 것도 있다.

- 이번엔 진짜 팜므파탈인가.

▲ 사실 '마린보이' 때는 그냥 성격이 차가운 여자였다. 이상하게 화보만 찍어도 내 이름 앞에 팜므파탈이 붙더라. 이번엔 그런 성격이 강하다. ‘간기남’이 내가 처음으로 스스로 인정하는 팜므파탈 캐릭터다.

- 노출이 상당하다는 소문이다.(영화의 공개 전 인터뷰가 진행됐다) 부담스럽지 않았나.

▲ 노출이 있다는 걸 알고 선택한 건 아니다. 시나리오 상에는 그런 설명이 없었고 (노출)장면 한 달 전 콘티를 받고 허걱 했다. 그것 때문에 김형준 감독님과 말다툼도 했다. 내가 선택한 영화니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박희순 오빠랑 디테일하게 우리 둘만의 콘티를 짰다. "여기서 옷을 당길 거야, 이 장면에서 머리를 넘길 거야" 등 정말 세밀하게 논의했다. 막상 촬영 때는 괜찮았지만 사실 마음고생이 많았다.

- 비슷한 이미지가 반복되면 부담스럽지는 않나.

▲ 그런 이미지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았고 들어오는 작품의 10개 중 8개가 진한 장르거나 센 캐릭터다. 예전에는 나도 '밝고 명랑한 것을 얼마든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으로 속상했지만 이제는 생각을 바꿨다. 감독님들이 섹시한 캐릭터를 내게 제안한다면 다양하게 원하는 걸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나이 40이 되서도 이런 작품만 들어오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 때가 되면 억척스런 아줌마 역할부터 노처녀 역할도 할 수 있지 않겠나. 팜므파탈 이미지도 가지지 못해서 속상한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 가장 인기 있는 화보 모델 중 한 명이다.

▲ 어릴 때부터 워낙 화보 촬영을 좋아했다. 데뷔 때는 그렇게 자주 제안이 오는 게 아니니까 콘셉트만 잡히면 미친 듯이 외국 잡지를 다 사서 표정 연습을 했다. 정말 잡지가 닳도록 봤다. 포토그래퍼 분들이 어이없어 한 적도 많다. 지금도 콘셉트를 미리 달라고 해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고민하고 연구한다.

- 그렇게 함께 연기하고 싶었던 박희순이 상대역이었던 소감은 어떤가.

▲ 정말 박희순 오빠가 나오는 영화는 다 봤다. '세븐 데이즈'를 보면서 박희순 오빠만 보였다. 그 때부터 그의 모든 영화를 다 봤다. 박희순 배우랑 딱 한 번만 연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소속사 대표님이 이번 시나리오를 주셨다. 시나리오도 좋았지만 박희순 오빠가 상대역이라는 게 가장 신났다. 막상 촬영해보니 항상 나를 배려해주고 여배우를 챙겼다. 61회차의 촬영 중 희순 오빠가 60회차 출연는데 이런 스케줄이면 남들 촬영 시간에 쉴 법도 하련만 늘 모니터 앞을 지켰다. 착한 건 기본이었고 정말 멋진 남자였다.

- 멜로 장면을 촬영할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 항상 영하 6~7도의 날씨에 비를 맞으며 키스신을 찍거나 세트 안인데도 너무 추웠다. 결코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한 번은 비 맞으며 울면서 찍은 적도 있다.

- 하정우('구미호 가족'), 주진모('사랑'), 김강우('구미호 가족') 등 상대역들의 올해 활약이 대단하다.

▲ 하정우 오빠는 '구미호 가족'으로 같이 데뷔했는데 지금 대배우가 돼 있어서 엄마 마음처럼 뿌듯하다. 그 때부터 연기를 워낙 잘 했다. 주진모 오빠야 그 때나 지금이나 탑배우이고, 김강우 오빠는 너무 묵묵히 열심히 하는 분이다. 모두들 계속 잘 됐으면 좋겠다.

- 여배우들에 비해서 남자 배우들에게 더 많은 선택의 폭이 주어지는데 아쉬움은 없나.

▲ 내 성격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저 제 앞에 떨어진 일들을 열심히 할 뿐이다. 매사에 긍정적인 편이다. 지금까지 연기해왔고 앞으로 더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행복하다. 누군가는 40대 때 빛을 발할 수도 있고, 60~70대 때 전성기가 될 수도 있는 거잖나. 전혀 조급하지 않다. 또 너무 일에서만 행복을 찾고 싶지는 않다. 개인 박시연으로도 행복한 삶이 있잖나.

- 결혼 생활을 무척 즐기고 있는 걸로 보인다.

▲ 결혼하기 참 잘했다. 결혼하고 얼굴 좋아졌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이번에 인터뷰 하면서 남편에게 괜찮냐는 질문을 듣는데, 전에 결혼 전에도 부모님께 시나리오를 한 번도 보여드린 적이 없다. 일에 있어서는 철저히 사무실의 의견을 제외하고는 논의하지 않는다. 남편에게 이 작품에 대해 전혀 얘기를 안했는데 전혀 불평이나 질문도 없다. 무조건적으로 제 편을 들어줘서 마음이 편하다.

- 연기 생활 중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 2000년에 미스코리아대회에 참가한 후 2004년까지 중국에서 혼자 드라마를 찍었다. 매니저도 없고 닭과 함께 버스를 타는 그런 시골에서 지내며 출연했다. 지금 기억해보면 좋은 추억이다. 말이 안 통해도 손짓발짓으로 다 통했다. 춥기도 너무 추웠다. 어찌 보면 바보스러울 만큼 무던한 편인데 모든 건 마음가짐에 있는 것 같다. 중국에서 엄마 보고 싶다고 울고불고 밥이 맛없다고 울고 했어도 지나고 보니 행복한 추억이다. 세상의 백만장자라도 모두 행복한 건 아니잖나. 다 내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다.

- 40대에는 어떤 모습일까.

▲ 결혼하고 멋있게 일하고 있는 김희애, 오연수, 김남주 선배들 같은 모습이고 싶다. 아름답게 나이 들어서 아이들도 잘 키우고 일도 열심히 하면서 후배들이 '박시연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해주면 정말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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