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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정의

한국어로 옮길 때에는 가극(歌劇)이라는 번역어를 쓰기도 하지만 오페라는 단순히 음악이 많이 사용된 연극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어떤 무대 예술이 과연 오페라의 범주에 속하는지 판가름하기 위해서는 주로 다음의 기준이 쓰인다.

- 이탈리아에서 16세기 말에 나타난 음악 연극의 흐름을 따른다
- 작품 전체가 작곡되어 있다

음악에 따라 전개되는 연극.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와 같이 막 전체를 통하여 음악이 계속되는 경우도 있고, 음악의 중간에 말에 가까운 레치타티보(서창)나 일반 대사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오페라는 모든 예술, 즉 언어예술·시각예술·음악예술이 이상적으로 혼합된 것이다. 이 3가지가 하나로 어우러져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오페라는 감동과 활력을 준다.

오페라의 구성

오페라는 노래를 중심으로 한 극으로서, 독창, 합창, 관현악을 사용하고, 발레도 참가하는 규모가 큰 음악극이다. 독창의 부분은 보통 아름다운 서정적인 가락인 아리아(영창)와 주로 언어의 악센트로 이야기하듯이 부르는 레치타티보로 구분한다. 아리아의 계통에는 아리에타, 아리오소, 카바티나, 세레나데, 로맨스 등도 포함되어 있다. 중창은 때때로 극 중의 주요 대화의 부분으로 쓰이며, 합창은 군중이 노래한다. 때로는 극적인 박력을 강조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관현악은 전곡을 통하여 노래 반주와 장면의 분위기를 강조하며, 또는 전곡의 시초에 서곡 또는 전주곡을 연주하여 극 전체의 성격을 암시한다. 또한 극중의 행진곡이나 발레 음악, 막간에 연주하는 간주곡 등도 관현악의 일이다.



오페라의 역사

오페라(opera)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로 "작품"이라는 뜻이며, 같은 뜻의 라틴어 opus에서 왔다. 이 이름이 독창자와 합창자의 노래와 연기와 춤을 무대 위에서 펼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야코포 페리(Jacopo Peri) 다프네(Dafne)가 지금 이해하기로는 오페라의 첫 작품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1597년경에 쓰였으며 피렌체의 휴머니스트 지식인들이 결성한 Camerata de' Bardi에서 영감을 얻었다. 다프네는 고전 그리스 극을 되살리자는 르네상스적인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카메라타의 일원들은 그리스 드라마의 "코러스"(chorus:그리스 드라마의 노래 부분) 파트를 맡았고 모든 역할의 대본까지도 그대로 사용했을 것이다. 오페라는 이러한 상황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이해되었다. 현재 다프네는 전해지지 않는다. 페리의 그 후 작품인 1600년경에 작곡된 에우리디체가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현재 정식으로 상연되는 초기 오페라의 대표적인 작품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이며, 이는 1607년 만토바 궁정에서 작곡했다.


오페라의 기원

오페라의 기원은 중세 예배극까지 기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 전통 형식은 16세기 피렌체에서 그리스 고전비극에 대한 당시의 개념과 결합되었다. 야코포 페리, 야코포 코르시, 프란체스코 카발리,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와 같은 초기 작곡가들은 다프네·율리시스·오르페우스 등 옛 신화에서 소재를 찾았으나,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포페아의 대관식 L'incoronazione di Poppea〉은 로마의 실제 인물 네로와 포페아를 다루었다.

파리의 루이 14세 궁정에서는 장 바티스트 륄리의 호화로운 작품이 오페라의 발달을 촉진시켰고, 빈의 궁정에서는 피에트로 안토니오 체스티의 이탈리아 오페라가 공연되었다. 영국에서는 별로 발전하지 못했지만, 헨리 퍼셀이 여학교에서 공연하려고 작곡한 걸작 〈디도와 아이네아스 Dido and Aeneas〉가 나왔다. 18세기 중엽 런던에서 대중화된 오페라는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형식을 독일 태생의 작곡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이 우아하게 다듬은 것이었고, 헨델은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로 형식화한 알렉산드로 스카를라티의 오페라 양식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아리아에서는 행동은 정지되지만 등장인물은 노래로 그 순간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했다. 따라서 주연 가수의 역할이 한층 중요해졌고 특히 여자역 대부분을 맡았던 카스트라토(castrato : 거세한 남성 소프라노)에게 특별한 관심이 모아졌다. 같은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장 필리프 라모가 극적 효과를 위해 대사를 강조하고 형식을 더 유연하게 하고 대규모 발레 막간극을 늘리는 등 오페라를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이와 비슷한 무렵에 보다 세속적인 경향의 희가극이 나타났다. 영국에서 공연된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 The Beggar's Opera〉는 사회와 정치를 날카롭게 풍자한 작품이고 함부르크에서는 좀더 평범한 일상의 소재를 다룬 오페라가 공연되었다. 나폴리 역시 대중 오페라의 근원지로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의 〈마님이 된 하녀 La serva padrona〉 같은 작품이 나온 곳이다. 크리스토프 글루크는 음악활동 초기부터 오페라 발전에 이바지했고 후에 기량이 뛰어난 가수의 역에 의존하던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나 극(劇) 자체를 강조하는 오페라로 개혁하여 상당한 반응을 일으켰다. 그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Orfeo ed Eurydice〉·〈아르미데 Armide〉·〈알체스테 Alceste〉, 그리고 이피게네이아에 관한 2편의 오페라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는 본보기로 고전적인 효과와 비극적 정서를 나타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첫번째 걸작 〈이도메네오 Idomeneo〉에서 이와 비슷한 경향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뒤에 나온 3편의 걸작 〈피가로의 결혼 Le Nozze di Figaro〉·〈돈 조반니 Don Giovanni〉·〈코지 판 투테 Cos" fan tutte〉에서는 선배 작곡가들의 특성과 희가극을 결합시켜서, 앙상블 피날레(막이 끝날 즈음 등장인물들이 모두 무대에 나와 부르는 노래)를 극 진행의 중요 수단으로 썼고, 앙상블 피날레에 교향곡 형식을 도입했다. 그의 〈마술피리 Die Zauberflöte〉은 징슈필 을 숭고한 경지로 끌어올렸다.

〈메데아 Médé;e〉를 작곡한 루이지 케루비니와 〈베스타의 무녀 La Vestale〉를 작곡한 가스파레 스폰티니는 앞으로 새로운 정가극(opera seria)이 나올 수 있도록 희망을 불어넣었고 루트비히 판 베토벤에게도 영향을 주어 〈피델리오 Fidelio〉가 탄생되었다. 한편 도메니코 치마로사의 희가극 〈비밀결혼 Il matrimonio segreto〉은 조아키노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Il barbiere di Siviglia〉·〈신데렐라 La Cenerentola〉를 비롯한 일련의 성공적인 희가극에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로시니의 후기 오페라는 장중하고 낭만적인 양식을 띠며, 자코모 마이어베어에 이르러서는 훨씬 더 웅장해졌다.


오페라의 발전

19세기에 들어와서 오페라는 국민주의적 성향으로 발전했다. 조반니 벨리니의 영향력있는 작품과, 비극과 희극을 망라해서 60여 편을 작곡한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작품들은 주세페 베르디의 영광을 위한 디딤돌이 되었다. 베르디는 초기 작품은 미숙했지만 〈오텔로 Otello〉·〈팔스타프 Falstaff〉에 이르러서는 극과 음악에 완전히 정통하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카를 마리아 폰 베버의 낭만적 오페라 〈마탄의 사수 Der Freis-chütz〉와 하인리히 아우구스트 마르슈너의 오페라가 오페라에 혁명을 일으킨 거장 리하르트 바그너에 의 길을 닦았다. 바그너의 대표작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파르치팔 Parsifal〉·〈니벨룽겐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는 오늘날까지 최고 걸작으로 여겨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다니엘 프랑수아 에스프리 오베르가 잠시 인기를 얻은 뒤 샤를 구노와 앙브루아즈 토마, 조르주 비제, 쥘 마스네의 시대로 넘어갔는데 이들의 작품에는 그랑 오페라와 오페라 코미크 가 교묘하게 섞여 있다. 자기 자신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추구한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트로이 사람들 Les Troyens〉이 뛰어난 서사 비극으로 평가받은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비로소 오페라의 대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한편 러시아를 비롯한 몇몇 나라의 오페라는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미하일 이바노비치 글린카의 독창적인 오페라는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와 모데스트 무소르크스키에 이르러 성격이 아주 다른 형태의 오페라로 발전했다. 체코슬로바키아에 서는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애국적 작품에 이어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한층 서정적인 오페라가 나타났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레오슈 야나체크의 사실주의 오페라가 점점 주목을 받았다.

헝가리에서는 벨라 바르토크가 〈푸른 수염 공작의 성 A Kékszakállú herce vára〉을 작곡했고, 스페인에서는 마누엘 데 파야가 〈허무한 인생 La vida breve〉을 작곡했는데 이들은 각각 자기 나라의 민속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이탈리아에서는 자코모 푸치니와 피에트로 마스카니가 이끄는 베리스모(verismo : 현실파로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일어났던 사실주의 운동) 오페라가 번성했다.

독일에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살로메 Salome〉·〈엘렉트라 Elektra〉에서 음악극의 본래 의도를 실현하고자 했으나 그뒤 〈장미의 기사 Der Rosenkavalier〉 등 성공적인 희가극에서는 서사성을 약화시켰다. 프랑스에서는 클로드 드뷔시가 작곡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Pelléas et Mélisande〉는 아주 독창적이긴 하지만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모리스 라벨은 황홀한 단막 오페라 2편을 작곡했다.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모세와 아론 Moses und Aron〉,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 Wozzeck〉·〈룰루 Lulu〉, 이고리 스트라빈스키의 〈난봉꾼의 행각 The Rake's Progress〉, 쿠르트 바일의 풍자 오페라, 벤저민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스 Peter Grimes〉는 모두 훌륭한 현대 오페라라는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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