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야구2012.09.27 14:43

 

 

구단이 감독을 마음대로 해임하는 것은 팬의 입장에서도 좋지 않다. 계약기간 종료후 재계약을 안하면 될 것을.. 정말 저럴 필요가 있을까?  마치 권력을 가진자들의 입맛에 맞는 표현에 따른 횡포로 밖에 안보인다.

- jamesku -



독립구단(獨立球團) 고양원더스는 경기도 일산 끝자락에 있었다. 한적할 줄 알았던 그라운드가 형형색색 유니폼으로 넘실댔다. 고교생, 대학생, 사회인야구단 선수들이 공 던지고 배트를 휘둘렀다. '깡깡' 하는 파열음이 가을 하늘 위로 울려 퍼졌다. 그들이 지방에서 여기까지 온 이유는 한 가지다. '야구의 신(野神)'에게 숨은 재능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올해 나이 칠십인 김성근(金星根)은 야구장 한복판 감독실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심해보였지만 눈길은 예리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유명해졌더라'. 영국 시인 바이런의 말을 야신에게 패러디해보면 '감독에서 잘릴수록 더 유명해지더라' 정도가 될 것이다. 그는 아마·프로를 거치며 12번 해임됐다. 이상한 것은 그럴수록 그 이름이 높아지고 목소리는 더 커졌다.

내로라하는 기업이 강사로 모셔가고 박근혜·문재인 같은 유력 대선 후보가 그를 만나기 위해 달려오고 있으며 야구계에 현안이 있으면 기자들이 야신의 판정을 들으려 줄을 잇는다. 세상은 열광하지만 그의 목을 친 구단들은 점점 불편해질 것이다.

김성근의 좌우명이 '일구이무(一球二無)'다. 스스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공 하나에 승부를 걸 뿐 두 번은 없다'는 뜻이냐고 하니 그가 웃었다. "인내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가 올 때 잡지 못한다는 거지요. 총알 많으면 난사(亂射)하게 되잖아요."

◆"두려운 건 비판이 아니라 패배다"

김성근은 통산 1234승57무1036패라는 기록을 남기고 지난해 고양원더스 감독이 됐다. 최근 한대화 감독을 전격 해임한 한화가 그를 새 감독으로 영입하려 했지만 없던 일이 됐다. 프로야구로 복귀할 기회를 그는 내던졌다. 대화는 거기서 시작됐다.

―왜 안 간 겁니까.

"세 차례 한화 측과 만났습니다. 제가 내건 조건은 한 가지였어요. '시즌이 끝날 때까지 한대화를 놔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중간에 사람 자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넥센 김시진 감독 건도 그렇고요. 한화는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화가 약속을 어겼나요?

"어겼죠. 한 감독 해임 소식을 듣고 놀랐어요. 한 감독이 새카만 후배인데, 선배로서 체면도 있고 나이 든 사람으로서 신의(信義)도 있고…. 그게 한화를 단념하게 된 이윱니다."

―한화행(行)을 포기하면서 고양과 2년 재계약을 맺었습니다.

"프로는 이제 끝났다는 얘기지요."

―'김성근 감독은 이제 프로에 안 간다'고 써도 되겠습니까.

"2년 뒤면 우리 나이로 일흔셋인데, 그때도 나를 필요로 하는 팀이 있을까? 일단 여기서 선수를 키우는 것도 프로 가는 것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까.

"문형, 한 해에 야구계에서 실업자가 얼마나 생기는지 알아요? 300명입니다. 나라 전체로 보면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많은 숫잡니다. 오갈 데 없는 선수들, 저라도 구해야죠. 지금까지 고양원더스에서 프로야구팀으로 5명이 갔어요. 남은 선수들뿐 아니라 아직 야구에 미련을 못 버린 선수들에겐 큰 자극이 될 겁니다. 이제 목표는 1군에서도 살아남는 선수를 키우는 겁니다."

―한 번만 더 잘리면 고 김동엽 감독의 기록과 같아지는데요.

"흐음? 동엽이가 그렇게 많이 잘렸었나? 허허 그렇다면 생각이 바뀌는데…,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 아닌가?"

―12번 다 진짜 잘린 겁니까.

"계약 만료까지 포함해서 그렇고요, 어디 보자, 아마 때 충암고, 마산상고, 기업은행 감독 때는 아니고. 태평양은 파이어(fire·해고) 삼성도 그렇고 쌍방울·LG·SK도 잘린 거네. OB에서는 계약 만료돼서 나온 거고."

―잘릴 때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풉니까.

"스트레스? 그런 게 왜 생겨요. 전 스트레스 안 받습니다. LG 감독 할 때 항상 위가 아팠어요. 온종일 야구 생각만 하다 보니 신경과민 때문에 생긴 증상인데 잘리고 나니 이틀 만에 통증이 사라지더군요. 전 현역으로 있을 때 전력투구합니다. 떠날 때는 절대 미련 갖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족 생각은 다를 텐데요.

"전 잘리는 날이면 손 번쩍 들어 흔들며 문으로 들어섭니다. 딱 두 마디 하죠. '잘렸어! 끝났어!' 집사람도 한마디밖에 안 해요. '아! 그래요' 하고. 이틀 정도 쉰 다음엔 중학교고 고등학교고 대학교고 아무 데나 찾아갑니다. 거기서 학생들 가르치며 앞날에 대비하는 거죠."

―참 독특한 해고 대처법입니다.

"원래 뒤를 돌아보지 않는 성격 탓도 있지만 고 서영무 감독의 일을 보고 '절대 미련 두지 말자'고 결심했어요. 그분이 야구도 잘했지만 인간미 넘치고 인간관계도 얼마나 넓은 분이었습니까. 그런데 삼성에서 잘리자 너무 괴로워하시더군요. 그러다 결국 돌아가셨지요. 냉정하지 못하면 자기가 쓰러집니다."

◆"나는 야구 잘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다"

김성근은 40년 넘게 감독을 하며 세상과 수없이 부딪혔다. 그에겐 '독불장군(獨不將軍)' 이미지가 굳어졌다. 그렇지만 그의 소원은 한 가지뿐이라고 한다. "전 온종일 일 년 내내 야구 생각만 하고 삽니다. 그것이 그토록 받아들이기 힘든 겁니까?"

―왜 그렇게 구단과 불화가 잦았습니까.

"제가 아부를 못 해요. 우리나라가 인맥과 학벌 중심 사회라고 하지만 실제론 아부 사회입니다. 오너들도 처음에는 안 그런 척하지만 아부를 원하고요. 참 이상한 것이 아부해서 성공한 사람은 후배들에게 더 아부를 바란단 말이야. 돈 바쳐서 승진한 이가 악착같이 돈 뜯으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죠. 오늘 아침에 미래에셋에 강의 가서도 그랬어요. '능력으로 승부해야지 아부를 원하는 회사를 만들면 안 된다'고요."

―구단들은 수십, 수백억을 쓰는데 아부 좀 하면 안 됩니까.

"아부라는 게 이런 겁니다. 구단 사장이나 오너가 제게 '이 선수 자르라'고 합니다. 남들 같으면 '알겠습니다' 하겠지만 그럴 때마다 저는 '안 돼!' 하고 집으로 와버립니다. 선수를 정리하는 것은 감독의 역할이지 왜 사장이나 오너가 끼어듭니까? 그것 때문에 '김성근은 (구단) 말을 안 듣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지요."

―그렇다면 프로야구팀에선 감독이 왕(王)이라는 건가요.

"구단이 할 일은 서포트(지원)고 감독이 할 일은 이기는 것이지요. 그러려면 운동장에선 당연히 감독이 '왕'이어야 합니다. 처음엔 그렇게들 하는 척해요. SK에 갔을 때 '이겨달라'더군요. 이겨줬지요. 그런데 계속 이기다 보니 자기들만 뒷전에 있는 것 같거든. 슬슬 클로즈업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지요. 그런 마음이 생기면 야구에 개입하는 거고."

―구단이 야구에 어떻게 개입한다는 겁니까.

"선수를 사적으로 불러 술 사주고 밥 사주고 부진한 선수 있으면 자기 방으로 불러 달래며 심리학자 흉내 내는 거지요. 그래야 '우리도 제 역할을 했다'는 명분이 생길 거 아니겠어요? 그러면 한 팀에 감독이 두 명, 세 명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감독이 그런 일에 자꾸 타협하다 보면 나중에는 사장한테 혼나는 일까지 생깁니다."

―사장이 감독까지 혼냅니까?

"태평양에서 그런 일이 있었어요. 당시 사장이 내 장인과 동갑이었어요. 장인이 '너무 뻣뻣하게 굴지 말라'고 했지만 전 듣지 않았어요. 그런 거 감독이 구단과 타협하는 팀치고 성적 좋은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구단 개입을 막는 것도 만만치는 않지요.

"저는 구단이 선수, 코치 사적으로 부르거나 하는 거 절대 그냥 놔두지 않아요. 사장 불러서 '너,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각서 써'라고 해서 반드시 각서를 받아두지요. '리더는 김성근이다' 이걸 꼭 전 각인합니다."

―명분, 의리 이런 걸 굉장히 중하게 여기는 성격입니까.

"SK 때 얘기는 가급적 안 하려 했는데, 저는 절차와 명분에 제 목을 겁니다. 아무래도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아서 '시즌 끝나고 그만두겠다'고 한 적이 있어요. 구단 사장이 문자메시지를 보냈더군. '이번 사태는 전적으로 김 감독 책임입니다' 하고. 근데 문자로 그런 말 하는 게 전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예의에 벗어나는 거 아닌가요? "

―SK 물러날 때의 화가 아직도 안 풀렸습니까.

"내가 알기론 최태원 회장은 '재계약 OK' 사인을 했어요. 그런데 사장이 미적거리더니 '(이)만수한테 양해를 구해야겠다'는 거야. 내가 실력으로 재계약하는 게 양해를 구할 일입니까? 너무 열받았어요, 그때."

―감독 하기도 힘든 일인데 야신이란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야신은 '코끼리'(김응용 전 삼성 사장)가 붙여준 건데…, 근데 이상하단 말이야,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내가 코끼리한테 졌거든? 그런데 내가 야신이면 자기는 뭐지? 아무래도 날 높여주는 척하면서 골린 거 같은 생각이 드는데."

―말은 맞는 것 같은데 감독이 왕인 구단이 있을까요?

"있죠, 고양원더스! 여기 직제로는 사장이 제 밑에 있어요. 구단주도 아예 간섭을 안 하고요. 허민 구단주가 그런 면에서 젊지만 아주 똑똑한 사람입니다. 야구에 대해선 전적으로 제게 일임하니까요."


고양원더스 코치들의 유니폼 사이에 김성근 감독이 서 있다. 김 감독의 백넘버는 38번이다. 그 숫자를 택한 이유를 물으니"삼팔광땡 아니면 따라지, 나는 인생을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 이진한기자 magnum91chosun.com

◆"나는 늘 절실했고 배가 고팠다"

이야기 도중 김성근이 주전자를 들어 컵에 물 붓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 "세대교체는 이렇게 하는 거요. 위에서 부으면 돌고 돌아 넘치는 식으로. 우리나라는 안 그러잖아. 홱 물 비워버리고 새로 치우는 식이니. 그러니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한국 사회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일본에서도 차별을 받긴 했지. 일본인들은 평상시엔 차별 안 해요, 중요할 때만 하지. 예를 들어 취직 같은 거 할 때. 미쓰비시전자에 지원했는데 실력은 OK, 그런데 안 뽑아. 다이와증권에서도 실력은 OK, 그런데 낙방. 그럴 때 낙담하거나 매달릴 필요 없습니다. 일본말로 '요시(좋아), 다음에!' 하고 마음먹으면 되는 겁니다. 한국은 일본과 다르지요."

―어떻게 다른데요.

"아무 데서나 막 차별하잖아. 제가 현역 시절에 '반쪽바리'라는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난 적도 있어요, 하하."

―일본에서 자랐기 때문에 냉정한 성격이 된 겁니까.

"부모님 고향이 경남 진양입니다. 전 교토(京都)에서 태어났고요. 7형제 중에 제가 여섯째였는데 아버지가 막노동을 했어요. 먹을 게 늘 부족했습니다. 그렇지만 전 집안을 원망하거나 떼를 쓴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차라리 밭에서 고구마 훔쳐 먹고 가게에서 물건 훔친 적은 있어도요."

―현역에서 은퇴할 때도 그랬지요.

"1961년에 기업은행에 들어왔는데 64년에 다쳤어요. 투수가 팔을 다쳤으니 끝난 거지. 전 후회하거나 신세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파트별 공부를 했지요. 투수 공부를 하고 타자 공부 하고 포지션별 수비 공부 하고. '일구이무'가 바로 이런 거예요. 준비하지 않으면 어떻게 기회를 잡아요. 전 지금까지 살면서 누구보고 뭐 시켜달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상대가 전부 데려간 거지요."

―요즘 감독 수난 시대입니다. 한대화 감독에 이어 김시진 감독마저.

"세대교체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닌데, 전 코끼리(김응용·71)도 돌아오고 김인식 감독(65)도 복귀했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들 감독 맡으면 충분히 성적 낼 수 있거든. 너무 젊은 감독들로 가는데 신구(新舊)의 머리 대결도 볼만한 거 아닌가?"

―김응용 사장은 당뇨가, 김인식 감독은 아직 중풍기가 남아있던데요.

"김응용 사장은 건강 유지하려고 술 안 마시는 거고, 김인식 감독은 몸이 그래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야구를 머리로 하는 거지 몸으로 하는 건가?"

―감독 생활이 40년째입니다. 존경하는 감독이 있습니까.

"김응용, 김영덕, 김영조, 김계현 감독. 김응용, 김영덕은 스타일은 다른 거 같은데 1년간 팀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은 똑같아요. 너무 궁금해서 일부러 그 밑에 들어가 배운 적이 있어요. 직접 보니 공통점이 있더군. 확고하게 밀어붙인다는 거. 그러지 않으면 장기 페넌트레이스를 운용할 수 없거든요."

―김영덕 감독이 한화 시절 한국시리즈 때 보니 상대편 에이스가 나오면 피하던데, 전 이해가 안 가더군요. 정면 승부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일본식 야구라는 말도 듣고.

"아니죠. 그건 김영덕 감독이 옳아요. 어차피 한국시리즈는 1, 3, 5, 7 잡거나 2, 3, 6, 7 잡는 법으로 가야 하거든. 저도 SK 시절 에이스 김광현을 주로 상대 넘버 투나 넘버 스리랑 붙였어요. 이길 확률이 높으면 그 길로 가야 하는 겁니다."

―노장(老將)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경륜 있는 노장일수록 리더십이 강합니다. 리더십이 강하면 조직이 강해지지요. 예를 들어 4대6이 있다고 해봐요. 분명 6이 이길 것 같죠? 그런데 4가 이길 수도 있는 게 바로 스포츠입니다. 3이나 4를 갖고 7이나 6을 이기는 거, 그게 경험이고 지식이고 분석력인데 그런 거라면 젊은 사람보다 나이 든 사람들이 낫잖아요."

―명감독 얘기 나온 김에 역대 최고 투수와 타자는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투수는 뭐니 뭐니 해도 선동열과 최동원이죠. 둘은 아주 막상막하야. 선동열은 아까워. 맨 먼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실력을 가졌는데도 못 갔으니. 그 친구 말술이어서 현역 오래 못 했다지만 그것도 견딜 수 있으니까 마시는 거지. 타자 중엔 이대호. 스윙이 아주 부드러워. 캐처? 음~ 박경완이 제일 아닌가?"

◆"외로워야 리더다!"

김성근은 감독으로 있을 때 절대 선수들과 함께 밥을 먹지 않는다. '친근한 감독'이 되는 순간 자기 야구가 무너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엄격하고 혹독하고 고함치는 대신 칭찬에 박하다. 그는 "선수를 자식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렇다"고 했다.

―선수를 자식이라고 생각한다며 왜 그리 잔인하게 합니까.

"손주가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할아버지는 손주가 걷다가 넘어지면 금방 일으켜 세우죠. 어리광을 부리고 나쁜 습관을 반복해도 허허 웃기만 하고요. 아버지는 안 그렇습니다. 자식이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가슴이 아프죠. 그래도 아버지는 그래야 합니다."

―SK 시절 최고참 김재현을 공개적으로 혼낸 것도 그런 이윱니까.

"그 친구가 스케일이 커요. 카리스마도 있고. 그해에 컨디션이 안 올라왔어요. 어느 경기인가 대타로 내보냈는데 삼진을 당하고 들어오더군. 다 듣는데 '너 이 따위로 하려면 야구하지 마' 했지요.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겠어요. 그런데 그다음 날부터 분위기가 바뀌더군. 6연승을 했어요."

―하루 만에 실력이 늘진 않았을 텐데요.

"태도가 바뀐 거지요. 그해 김재현은 한국시리즈 MVP가 됐습니다. 자축연 때 말했지. '언제나 끝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살아 돌아와 준 재현이에게 고맙다'고. 그 친군 이러더군. '끝까지 믿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뇌경색에 걸린 김광현까지 몰아붙인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그 사실이 언론에 알려졌을 때 제가 구단에 무척 화를 냈어요. '당신들 정신이 있느냐'고. 광현이가 한국 야구를 짊어지고 갈 선수인데 주위의 시선을 어떻게 견뎌내겠어요. 일찌감치 오키나와로 보냈지요. 엄하게 훈련시켰어요. 몸은 회복했지만 아팠던 것에 마음이 흐트러질까 봐 극한까지 몰아붙인 겁니다. 그걸 이겨내야 김광현이 산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스타라도 컨디션이 나쁘면 안 쓰는 걸로 유명합니다.

"야구는 이겨야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그 순간에 최고만을 내보냅니다. 박재홍이 한동안 경기에 못 나간 적이 있어요. 그러다 겨우 출전한 경기에서 번트 두 번을 다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그날 저녁에 찾아왔어요. '왜 왔어' 하고 물으니 '저 때문에 졌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더군. 불만이 컸을 텐데도 그렇게 말하니 나도 속이 뜨거워졌어요. '네가 여기 와준 것만으로도 됐다'고 했어요. 재홍이가 엉엉 울더군. 선수는 그러면서 성장하는 겁니다."

―펑고(FUNGO)도 무지막지하게 치시죠.

"박진만이 에러를 두 개 한 적이 있었어요. 그날 경기 끝나고 내가 직접 500개를 쳐줬어요. 양쪽 사이드로만 골라서. 나도 그때 오른손 통증이 있어 죽을 뻔했는데 진만이는 거의 네 발로 기어다녔어요. 둘 다 기진맥진했지만 몸과 마음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정근우도 번트 잘못 대서 펑고 1000개를 친 적이 있어요. 새벽 2시 반에 들어오더군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야구는 벼랑 끝에서 길을 찾는 것과 같아요. 제가 처음 감독을 했을 때 제일 궁금했던 게 '왜 방망이를 안고 자는 놈이 없지' 하는 것이었어요. 전 잠도 안 자고 밤새도록 야구만 하고 싶었거든요. 야구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알아야 하는 겁니다. 그러러면 연습밖에 없죠."

―쌍방울을 맡았을 때 꼴찌를 리그 2위로 끌어올린 것도 훈련의 결과입니까.

"처음 그 팀을 맡았을 때 각종 연패(連敗) 기록과 꼴찌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었어요. 정말 아침에 눈 뜨고 하루 내내 야구 생각만 했습니다. 훈련도 훈련이지만 데이터 분석도 중요하죠. 기록을 살피다 보니 스물 몇 시합을 한 점 차로 졌더군요. 다 강공(强攻)하다 실패한 거죠. 그때부터 무조건 번트 작전을 썼어요. 이런 게 감독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집중하다 보면 상대 타자가 뭘 노리는지도 알 수 있게 됩니다."

―거의 신(神)의 경지네요.

"OB 감독 시절엔 유독 삼성에 강했는데 이유가 있어요. 상대 포수 팔 근육 움직임을 살피니 사인을 뭘 내는지 알겠더라고요. LG 감독 시절엔 삼성 진갑용의 사인을 보고 있는데 그걸 다시 삼성 조범현 코치가 보고 있더군. 날 살핀 거지. 그래서 가짜 사인을 냈어요. 하하. 상대가 금세 혼란에 빠지더군."

―별명이 또 있죠? '잠자리눈'이라고.

"태평양에 있을때 가만히 서서 사방을 다 본다고 붙여줬어요. 원래는 잠자리 눈깔인데."

야신과 대화가 길어지자 밖에서 난리가 났다. 야신의 눈도장을 받을 기회를 기자에게 빼앗긴 선수들이 계속 채근을 해댄 것이다. 빙그레 웃던 야신이 불쑥 말했다. "그런데 나이 든 기자랑 얘기하니 편하군. 말이 술술 나와. 젊은 친구들과 하면 다 듣고 꼭 엉뚱하게 쓰거든."

http://sports.media.daum.net/baseball/news/breaking/view.html?newsid=20120924104208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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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임스구 james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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