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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시니어비즈니스학 교수]안동으로 가는 고속도로의 어느 휴게소, 우산 없이는 걷기도 힘든 빗속에서 젊은 여성 한 사람이 갑자기 실종된다. 사랑하는 약혼녀의 실종에 초조해진 남자는 그녀의 행방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리고 한 꺼풀씩 드러나기 시작한 음습한 과거, 그의 약혼녀는 한 여성을 살해하고 그 사람 이름으로 살아오다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다.
 
요즘 상영되고 있는 '화차'라는 영화의 줄거리다. 이 영화는 살인과 실종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범죄영화는 아니다. '왜 여주인공이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가'에 초점을 맞춰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녀는 아버지가 진 사채 때문에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불법 신체포기 각서를 쓰고 사창가를 전전하다가 아기마저 잃게 된 후 자신을 추적하는 사채업자 조직을 피해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했던 것이다. 사람을 죽이고 지옥으로 향해 달려가는 '화차(火車)'에 올라탄 젊은 여성을 그린 이 영화가 인기가 있다는 것은, 끔찍한 죄의 무게에도 그 상황에 대해 관객이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뜻일 것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영화 속의 이런 일이 실제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통계를 발표했다. 이 통계에 따르면 생계용 대출을 받았다가 갚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출난민'이 400만여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또 여러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고 있는 다중채무자 수는 380만명, 이 가운데 고금리 대부업체에까지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은 247만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액의 빚과 살인적인 고금리에 시달리면서 신용불량자 문턱에 있는 사람이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10명 중 1명이라는 뜻이다. 대부업체에서 신규 대출을 받은 사람의 대출 목적은 생활비 충당이 41.4%로 가장 많았고 사업자금 18.2%, 대출상환용 9.7% 등의 순이었다.
 
문제는 글로벌 경기침체 때문에 한국 경제가 곧바로 좋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악화되면 고금리 부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한계 상황에 몰린 대출난민들은 결국 스스로는 헤어날 길이 없는 '절대빈곤층'의 벼랑에 내몰리게 된다. 우리나라의 절대빈곤층은 외환위기 당시 이미 14%를 넘었다. 여기에 갑자기 불어난 대출난민까지 새로운 절대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되면 정부가 어찌해 볼 수 없는 어려운 사회적 불안 상황이 야기될 수도 있다. 대출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제적이고도 종합적인 대책이 절박하게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첫째, 제2금융권과 대부업계 돌려막기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대출난민의 이자를 낮추고 상환을 장기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 탈출구를 마련해야 한다. 신용회복위원회 등 몇 군데 기관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업무량이 많고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지자체와 협력하여 금융난민을 더 많이 수용하는 방안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복지정책을 구체화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난무하는 정체 불명의 '복지총론'이나 선심성 종합선물세트가 아니라, 노력해도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사람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립하게 해 줄 것인가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진짜 복지다. 받는 사람이 실감을 못 하는 어정쩡한 보편적 복지보다는 가장 절박한 사람에게 복지 혜택이 돌아가도록 분명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셋째, 금융약자 계층에 대한 약탈적 대출을 규제해야 한다. 갚을 능력이 없는 것이 너무나 뻔한 사람에 대한 금융사의 고금리 대출은 그 자체로 사회적 범죄 행위나 다름없다. 대출난민을 양산할 뿐 아니라 금융사에도 치명적 위험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결국 또다시 국민의 세금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시니어비즈니스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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