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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8

신문서 성냥 기사 읽고 『성냥의 시대』 단편 발표했죠

소설가 조경란(43)씨의 책상 위에는 종이 조각이 수북이 담긴 상자가 하나 놓여 있다. 신문을 읽다 아이디어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기사를 발견하면 스크랩해 모아둔 곳이다. 상자에 담겼던 기사 중 몇 편은 소설로 탄생됐다. 그는 정기 구독하는 신문이 4종이나 돼 “꼼꼼히 읽는 데만 2시간 가까이 걸린다”며 웃었다. “신문 읽기는 하루 세 끼 밥 먹는 일처럼 당연한 일과”라는 조씨의 신문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박형수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소설책 어렵다는 기사 읽고 작품 방향 바꾸기도

책으로 둘러싸인 작업실에서 신문을 펼쳐든 조경란 작가. 그는 “신문 읽기로 하루를 시작하는 건 오랜 습관”이라며 웃었다. [김진원 기자]
“2009년 12월 말이었어요. 신문을 읽다 ‘성냥’에 대한 기사를 발견했어요. 일회용 라이터가 보편화되면서 성냥을 쓰는 사람이 점점 사라져, 우리나라에 성냥 공장도 단 한 곳만 남아있다는 내용이었어요. ‘아, 성냥? 그렇지, 한때는 중요했지만 지금은 그 소중함을 잃어버린 것들이 있지’라며 영감이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조씨는 그 기사를 오려놓고 밤낮 들여다보며 고민을 거듭했다. 일본 도쿄를 방문했을 땐 성냥 박물관부터 찾았다. 지난해 여름엔 우리나라에 남은 마지막 성냥 공장이라는 곳을 찾아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가을 『성냥의 시대』라는 단편을 발표했다.

 이런 일도 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공략했을 때, 카불의 동물원을 가장 먼저 폭격했다는 기사를 읽고 난 뒤엔 동물의 이야기로 전쟁에 대해 풀어낸 『난 정말 기린이라니까』를 썼다. 지금 집필 중인 소설도 신문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멸종 위기에 놓인 백두산 호랑이에 대한 기사를 읽고 가슴이 먹먹해졌어요. 호랑이 밀렵꾼을 삼촌으로 둔 한 사람의 이야기가 곧 완성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는 “신문에서 영감을 얻고 글감을 발견해내는 건 다른 소설가들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소설은 저잣거리의 문학입니다. 우리의 일상,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사회의 이야기를 담아내야 하는 것이죠. 사회에 대해 돋보기와 같은 호기심을 갖고 있는 소설가가 신문을 보지 않고 하루를 보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 겁니다.”

 조씨는 신문에 얽힌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담도 들려줬다. 한 인터뷰 기사를 읽은 뒤, 작품의 방향과 색깔을 바꾼 일이다.

 사연은 이렇다. 등단 초기, 조씨의 소설을 두고 평론가들은 ‘소설을 위한 소설을 쓴다’ ‘식자층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어려운 글만 쓴다’는 지적을 자주 했다. 표현하고 싶은 주제를 완벽하게 공부한 뒤 집필에 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조씨는 “받아들이기 힘든 평가였다”고 말했다. 그러다 우연히 신문에서 야채 장사를 하는 무학(無學)의 노인이 등장한 인터뷰 기사를 읽고 가슴을 쳤다. “소설책을 꼭 한번 읽고 싶은데 말이 너무 어려워 이해가 잘 안 돼 못 읽고 있다”는 구절을 발견한 것이다. “제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반성을 많이 하게 됐어요. 한글만 겨우 깨치신 분들도 내 소설을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저한테는 누구도 줄 수 없는 커다란 깨달음이었습니다.”

방 안에 숨어 지내던 나를 세상 속으로 밀어내

조씨는 “신문이 나를 작가로 길러냈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무 살부터 스물다섯 살 때까지 집 안에 틀어박혀 신문과 책만 읽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대학도 떨어지고, 취업도 못하고 … .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사람이 돼야 할지 몰라 힘들었어요. 그때 신문을 보면서 나도 이 사회에 동참하고 기여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어요.”

 스스로를 ‘사회 부적응자’라 부르며 방 안에 숨어있던 조씨를 바깥세상으로 떠밀었던 기사는 사회면에 실린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찬찬히 읽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동참하게 되고, 너무 소외돼 있거나 부당한 일들에 대해서는 글을 써야겠다는 의지가 생겨났어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문학을 통해 언어로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된 거죠.”

 그가 작가로 등단한 통로도 신문이었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 아무 고민 없이 그가 정기 구독하던 신문의 신춘문예에 동시에 투고했다. 1996년 『불란서 안경원』이라는 작품이 당선돼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조씨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신문 읽기를 권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 절실한 고민의 정답이 신문 속에 담겨 있을 거예요. 그 많은 지면과 다양한 섹션 속에.”

조경란 작가에게 신문이란 ‘노란 불빛의 서점’이다

조씨는 소설가답게 신문에 대해 감성 가득한 정의를 내렸다. ‘노란 불빛’이란 그에게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없는’이라는 의미다. 따뜻하고 정감 어린 공간, 바쁜 발걸음을 멈추고 차분히 기분 좋은 사색에 잠기게 만드는 장소를 상징한다.

 “고흐도 그렇게 말했어요. ‘언젠간 노란 불빛의 서점을 그려보고 싶다’고요. 우리를 끌어당기는 장소가 가진 대표적인 이미지인 셈이죠.”

 신문 속에 담긴 다양한 정보는 ‘서점’에 빗댔다. 그가 관심 있어 하는 문화와 사회에 대한 이슈부터 미처 눈여겨보지 못했던 진실과 의혹들, 쉽게 접할 수 없는 과학과 경제에 관한 심층 정보까지 담겨 있는 정보의 보고다.

 그는 “신문은 그저 훑고 지나가기엔 너무 아깝다”고 말했다. “기사를 읽고 생각하는 훈련을 해보세요. 이걸 하루에 밥 세 끼를 먹듯 당연한 일처럼 반복하다 보면 내 삶에 필요한 정답들을 명쾌하게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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