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2.03.29

효과는 1억원에 불과한데 비용은 930억원
IC카드로 교체해도 카드대금 결제할 땐 계속 뒷면 마그네틱 사용
불법 복제 중 1% 미만인 현금인출기 피해만 방지… "국민들에게 불편만 끼쳐"

김석동 금융위원장. /조선일보DB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3월 초에 있었던 IC(집적회로)방식 신용카드 교체 대란(大亂)을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로 보고 '실패의 연구'를 하도록 실무팀에 지시한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소비자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공급자인 정부의 시각에서 정책을 추진한 행정 편의주의, 무사안일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금융 당국은 불법 복제에 취약한 마그네틱카드를 IC카드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지난 2일부터 6개월 예정으로 현금자동입출금기(CD/ATM)에서 마그네틱카드를 사용할 수 없도록 했는데, 사전 홍보 부족으로 고객들이 큰 불편을 겪자 하루 만에 방침을 수정해 6월 1일로 시행일을 연기한 상태다. 김석동 위원장은 "원점에서 재점검해서 필요하다면 제대로 추진하고, 필요 없는 정책이라면 백지화도 생각해야 한다"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당국이 정책 실패 원인으로 꼽는 것은 크게 네 가지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①공급자 마인드로 정책 설계

IC카드 대란이 발생하자 금융 당국 실무자들은 "국민들이 첫날부터 은행 창구로 몰려 'IC카드로 교체해 달라'고 하는 통에 문제가 커졌다. 며칠 기다렸다가 천천히 교체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 위원장은 공무원들의 이런 시각에 대해 "아직도 소비자 마인드가 부족하고 공급자 마인드에 머물러 있다"고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들의 현금자동입출금기 이용이 얼마나 잦고, 이를 제한하면 얼마나 불편한지를 국민의 눈높이에서 헤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②비용 대비 정책 효과 의문

모든 정책은 비용 대비 효과부터 따져야 한다. 그런데 IC카드 교체의 경우 이런 분석이 부족했다고 금융 당국은 반성하고 있다.

IC카드라고 해도 카드 앞면에는 IC칩이 들어가지만 카드 뒷면에는 예전처럼 마그네틱이 부착된다. 국내에는 IC칩만 부착된 IC 전용 카드는 없다. 가게나 식당에서 대금을 결제할 때는 IC카드라도 마그네틱을 이용해야 하므로 기존 마그네틱카드와 다를 게 없다. 마그네틱 부분을 복제한 카드로 유령업체 등에서 대금을 지급한 것처럼 꾸며 은행으로부터 결제대금을 받아내는 대부분의 카드 복제 피해는 IC카드로 교체해도 여전히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마그네틱카드에 비해 복제가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IC카드의 장점은 ATM에서 현금을 인출할 때만 발휘된다. 그런데 금감원 관계자는 "카드 복제 피해 가운데 ATM 현금 인출 피해는 1%도 안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4년간 카드 불법 복제로 440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결국 마그네틱카드 대란은 연평균 1억원 정도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벌어졌던 셈이다.

이처럼 효과는 크지 않은데 IC카드 교체비용은 930억원에 달한다. IC카드는 제조 단가가 1장당 2200원이라 마그네틱카드(300원)보다 1900원이 비싸기 때문이다. 비용은 930억원, 효과는 1억원에 불과한 것이다.

③"외국 사례 있으니…" 안일한 판단

금융 당국이 IC카드를 추진한 논리 중 하나는 해외 사례였다. 프랑스는 마그네틱을 겸용으로 사용하지 않고 IC칩만 사용하는 IC카드로 100% 교체됐고, 일본도 IC카드 도입을 추진 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처럼 100% IC카드로 교체하면 우리 국민들이 마그네틱카드를 사용하는 국가로 여행을 갈 경우 결제가 안 되는 불편이 따른다. 또 중국, 일본 등 해외 관광객들이 마그네틱카드를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는 문제도 생긴다.

④실무자 보고만 믿은 리더십

이런 여러 가지 문제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고 실무진의 판단만 믿고 정책을 실행한 리더십의 문제도 빠뜨릴 수 없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6일 기자들과 만나 "문제가 있다고 봤지만 실무진이 '여러 점검을 했다. 괜찮다'고 보고를 했었는데···(시행을) 해보니 문제가 커졌다"고 말했다. 실무자들만 질책할 게 아니라 금융 당국 수장들 스스로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고 사과하는 모습이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