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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리더십이나 협상력, 정치적 자질, 혹은 도덕적 순수성. 그런 것들이 생각보다 시원찮다면서 그를 비판하는 관점들이 있다. 세부적으로 고개 끄덕일 만한 대목이 없지 않다. 대통령이 되려면 그런 것들도 다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대선판에서 안철수에게 주목한 것은 그런 것들 때문이 아니었다. 안철수가 기존 정치의 한계를 넘어서서 이 나라의 미래를 열어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더 컸다.


이런 기대감은 기본적으로 그에게서 나왔겠지만, 딱 지금쯤 피어오름직한 역사적인 희망사항같은 것들이 그를 보면서 돋아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을 나는 '과거로부터의 자유로움, 정치로부터의 자유로움, 권위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지닌 한 인간에게 나라의 미래를 맡기고 싶은 욕망으로 이해한다. 그 세 가지를 나눠서 생각해보자.

첫째, 과거로부터의 자유로움 - 전쟁 이후의 분단사회, 고속성장한 산업화사회와 맞물린 독재 혹은 폭압정치를 거쳐오면서 생긴 상처는 지금도 우리 사회의 갈등의 바탕이 되어 있다. 그 해결이 과연 완결되었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 과거에 붙들려 미래까지 갈등에 헌납해야 하는 문제는,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들이다. 안철수는 그런 과거에 비교적 덜 붙들려 있다.

둘째, 정치로부터의 자유로움 - 이 땅의 정치가 민주주의와 국가 발전을 위해 기여한 바가 작지 않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그 정치가 상대 정당에 대한 지나친 적대감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은 짚고갈 만하다. 특히 광주항쟁과 정경유착 등으로 양대 정파간의 갈등이 내면화되면서 정책 사안별로 옳고그름을 따지는 이성적 정쟁이 아니라, 내편과 네편의 구별만 있는 진지전적인 당쟁이 고착화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서로 넘나들 수 없는, 상습적 대립의 정치시스템이 국가의 결정체계 전체를 후진국 상태로 붙잡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 후진 정치의 얽힌 고리에서 안철수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셋째, 권위로부터의 자유로움 - 노무현의 기억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그가 대통령이 되어 이 땅이 오랫동안 체질처럼 몸에 붙여온 권위의 습관을 상당 부분 떼어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대통령 의전체제를 엉성하게 만들었다든가, 오히려 무게감이 필요한 자리에서 경박한 처신을 했다는 비판도 받지만, 유연한 선택과 부드러운 리더십이 미래사회의 새로운 의사결정 방식과 문화 흐름의 중요한 소프트파워가 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의사와 첨단기업 경영자, 혹은 대학교수를 거치면서 성공한 아이콘으로 자신을 포지셔닝해온 안철수는. '콘서트'라는 형식의 토론 자리를 통해 스스로의 의견들을 설득력 있게 개진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높였다.

그는 권위가 아닌 진심으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고. 특정한 사람들이 아닌 많은 대중들의 생각을 중심으로 나라를 이끌 수 있다고 믿었고, 얽혀있는 과거를 재조직하는 정치가 아니라 글로벌로 뻗어가는 미래를 향해 방향을 잡고 시스템을 정비하는 그런 국정을 꿈꾸었던 것 같다. 이 미래형의 사유가 안철수를 띄운 핵심매력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단일화'라는 지극히 정치적인 프레임에 발 묶여 당황하다가, 후보직을 내려놓고 떠났다. 단일화는 집권 전략일 뿐, 절대적 가치가 아닌데도 그는 자신감 때문이었는지 자청하여 그 프레임에 맞춰 들어갔고, 결국 야당의 대표로 뛰는 문재인에게 양보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다리를 불 사르고 나온 결의는, 결국 여러 가지 모양새만 흠집내고 '용단'으로 불려야할 결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허탈감으로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단일화 때문에 목숨을 끊은 한 국민의 이야기나 지지도 하락의 낌새가 보이는 여론조사 결과들도 그의 결정에 어떤 방식이든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향후 안철수의 길이 어떨지, 대선판에서의 영향력은 또 어떨지 섣불리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은 그야 말로 '정치'이거나 '개인 행보'일 뿐, 그가 지녔던 '3대 자유로움'의 표현은 유예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돌아봐야 하는 것은, 안철수 바람이 환기시켰던 그 자유로움들, 즉 과거, 정치,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이젠 좀 더 미래지향으로 가는 나라를 만들 수 있는 리더십이 가능할까 하는 점이다. 안철수가 아니어도 좋지만, 그 중요하고 새로운 가치들은 포기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빈섬 이상국 <아시아경제 편집부장. 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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